Phonic Cycle~ Unmapped Rhythms 
: 그리드 없는 리듬의 청취

[JULY 2025]

Phonic Cycle~TILT에서 매월 진행되는 몰입형 청취 프로그램입니다.

 

특정 음악가, 앨범, 테마를 중심으로 소리의 구조와 흐름을 재구성하는 리스닝 큐레이션입니다.

 

다가오는 7월, Phonic Cycle~의 첫 기획 ‘Unmapped Rhythms’는 시간의 균질화에 저항하는 리듬의 가능성을 탐색합니다.

 

리듬은 오랫동안 시간의 격자 위에 정렬된 단위로 이해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일정한 박자와 반복에 기반한 구조는 리듬의 한 형태일 뿐, 그 본질을 온전히 설명하지는 못합니다.

 

이 기획은 리듬이 그리드 바깥에서 어떻게 감각될 수 있는지를 묻습니다. 정렬되지 않고 선형적이지 않은 리듬은 불확실성과 어긋남 속에서 작동하며 고정된 시간 인식을 흔듭니다. 예측 가능한 구조 대신, 파편화된 시간성과 미세한 어긋남이 리듬의 또 다른 양상을 형성합니다.

 

이번 큐레이션은 Autechre, SND, Vladislav Delay 등의 작업을 통해, 비격자적 리듬 감각이 어떻게 구현되어 왔는지를 조망합니다. 이들은 알고리즘적 오류, 시간의 지연, 물리적 잔향 등 기존 구조에 포획되지 않는 리듬적 요소들을 실험해 왔습니다.

 

리듬은 이상 규칙이나 반복으로 환원되지 않습니다. ‘Unmapped Rhythms’ 청취를 통해 시간 감각을 다시 사유하고, 격자 없는 리듬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하나의 제안입니다.

 

UNMAPPED RHYTHMS #1 AGF - Greim EP [2017]


AGF(Antye Greie-Ripatti)
‘poemproducer’라는 정체성 아래, 언어와 리듬, 신체와 기술을 교차시키는 방식으로 사운드를 구성해온 독일 출신의 사운드 아티스트다.

 

그녀의 작업은 비트를 기반으로 하지 않고, 분절된 음절, 불균일한 리듬 단편, 해체된 샘플을 통해 리듬 감각 자체를 재편한다. 목소리와 언어는 그녀의 주된 작곡 재료이며, 이를 디지털 도구로 해체하고 재배열함으로써 텍스트를 리듬의 단위이자 청취 가능한 정치로 확장한다.

 

'Greim EP' 에서는 찢어지는 저역과 거칠고 미세한 음향이 비트 없는 전자음악을 구성하며, 그녀의 사운드워크는 종종 공간, 공동체, 환경과 결합돼 청취를 하나의 분산된 정치적 행위로 전환시킨다. AGF는 음악을 ‘언어의 사운드화이자 리듬의 탈구조화’로 실험하며, 듣기의 구조 자체를 흔든다.

AGF – Greim EP [2017]

 

 

UNMAPPED RHYTHMS #2 Jan Jelinek - Loop-Finding-Jazz-Records [2001]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사운드 아티스트 얀 옐리넥 (Jan Jelinek)은 샘플링과 콜라주 기법을 통해 리듬의 구조를 재구성한다.

 

그의 2001년작 'Loop-Finding-Jazz-Records'는 잊힌 재즈의 리듬을 다시 흩뜨리는 ‘기억의 반복’. 루프는 규칙처럼 들리지만, 끝내 어디에도 정착하지 않는다. 재즈 레코드에서 추출한 샘플을 밀리초 단위로 해체하고, 미세한 소리와 유기적 질감, 미니멀한 관능미와 견고한 그루브를 교차시키며 리듬의 잔상을 그려낸다.

 

베를린의 작은 아파트에서 Ensoniq ASR-10 샘플러를 중심으로 제작된 이 앨범은, 음향적 회상과 시간의 파편화를 테마로 삼으며 그의 커리어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고, 2017년 재발매를 통해 젊은 세대에게 다시 소개되었다.

Jan Jelinek - Jan Jelinek - Loop-Finding-Jazz-Records [2001]

 

 

UNMAPPED RHYTHMS #3 Dakim - regos...of many moods [2020]


다킴(Dakim)
은 디트로이트 태생의 프로듀서이자 사운드 실험가로, 비트를 격자 위의 구조물이 아닌 유기적이고 무정형적인 존재로 다뤄왔다.

 

마칭밴드의 리듬 훈련과 재즈, 덥, 딜라 이후의 붐뱁 감수성을 바탕으로, 그는 MPCSP-시리즈 샘플러, Infinite Delay Loop 기법을 활용해 끊임없이 생성되고 붕괴되는 리듬의 흐름을 만들어낸다. 다킴에게 리듬은 연주가 아니라 반응이며, 템포는 숫자가 아닌 시간 감각이다.

 

'Regos' 시리즈는 이러한 태도를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작업으로, 구조 없는 루프, 무심한 드럼 스윙, 예상 불가능한 딜레이 잔향을 통해 기존 붐뱁의 그리드를 해체한다. 다킴은 “두 번 다시 만들 수 없는 리듬”을 추구하며, 정형화된 반복 대신 즉흥성과 우연성에 기반한 리듬적 패턴의 비정형성을 탐색한다. 그의 음악은 비트 그 자체가 아닌, 움직이는 감정과 호흡, 시간의 밀도로 작동하며, 그리드를 흐릿하게 하고 패턴을 잠재의식의 영역으로 미끄러뜨린다.

Dakim - regos...of many moods [2020]

 

 

UNMAPPED RHYTHMS #4 [The User] - Symphony #2 For Dot Matrix Printers [1999]

 


[The User]
는 건축가 토마스 맥킨토시 (Thomas McIntosh)와 작곡가 임마누엘 마덴 (Emmanuel Madan)으로 구성된 몬트리올 기반 사운드/미디어 듀오로, 기술의 유산을 사운드 구조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지속해왔다.

 

대표작 ‘Symphony for Dot Matrix Printers’는 폐기된 프린터를 오케스트라로 구성해, 프린터의 기계음 자체를 리듬과 패턴의 음원으로 삼은 프로젝트다. ‘Symphony #1’은 텍스트 파일을 악보 삼아 서버가 14대 프린터를 지휘하고, 각 기계는 증폭된 소음을 통해 음악적 구조를 구현한다. ‘Symphony #2’에서는 아무것도 출력하지 않고 증폭된 험(hum) 소리만으로 트랙이 구성되며, 점멸하는 리듬과 전원 차단이라는 무음의 클로징으로 퍼포먼스를 마무리한다.

 

이들은 구식 기술에 대한 테크노스탤지어를 음악적 재료로 삼고, 고장, 반복, 기계 작동의 패턴을 통해 기술의 유산을 감각화된 구조로 번역한다. 여기서 리듬은 프린트 헤드의 운동, 서버 명령의 주기, 타이핑 패턴의 배열 속에 존재하며, 음악은 사운드보다 기계의 움직임이 구성하는 질서에 가까운 형태로 제시된다.

 

[The User]는 음악과 기술의 경계를 미세하게 뒤섞으며, 리듬과 그리드를 인간이 아닌 사물의 로직을 통해 다시 감각하게 만든다.

[The User] - Symphony #2 For Dot Matrix Printers [1999]

 

UNMAPPED RHYTHMS #5 Grischa Lichtenberger - KAMILHAN, il y a péril en la demeure [2020]


그리샤 리히텐베르거 (Grischa Lichtenberger)
는 리듬을 파괴하는 대신 기계의 한계와 언어의 균열 속에서 재구성하는 독일 출신 예술가다.

 

그는 시퀀서의 그리드를 거부하고, 글로벌 BPM을 강제로 변화시켜 소프트웨어를 과부하 상태로 몰아넣는 ‘drawing restraint’ 방식으로, 리듬을 감각적 구조가 아닌 에러와 균열의 흔적으로 만든다.

 

그의 대표작 KAMILHAN, il y a péril en la demeure는 컴퓨터 생성 보컬과 무언어적 발화, 왜곡된 루프와 박자표의 망가짐을 통해 “구부러진 발라드”를 구성하며, 인식과 전달의 실패를 통해 새로운 청취 감각을 밀수한다. 그에게 음악은 조율된 흐름이 아니라 잔류된 감정과 기술적 잔해의 병치다. 사운드는 아카이브에서 꺼내 반복적으로 재가공되고, 즉흥성과 실시간 피드백 루프를 통해 의도적 불완전성으로 구성된다. 정제된 패턴보다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청자의 ‘회의적인 주의’이며, 짧은 트랙은 몰입보다 각성을 유도한다.

 

리히텐베르거의 음악은 구조 없는 리듬, 패턴 없는 반복을 통해 리듬이 아닌 리듬의 조건을 묻는 사운드 철학이다.

Grischa Licthenberger - KAMILHAN, il y a péril en la demeure [2020]

 

 

UNMAPPED RHYTHMS #6 Rashad Becker - The Incident [2025]


라샤드 베커 (Rashad Becker)
는 의식적 존재들이 머무는 청각적 서식지로써의 소리를 다루는 사운드 아티스트다.

 

PAN에서 발표한 Traditional Music of Notional Species 시리즈는 회로 안에서 유기적으로 증식하는 듯한 소리들—중얼거림, 미끄러짐, 찢어짐—을 통해 리듬 없는 구조의 내부 질서를 탐색한다.

 

최신작 'The Incident'에서는 가믈란에서 영감 받은 금속성 타악기, 불확정적 음의 운동, 반복 모티프의 교차 등을 통해 추상적 허구 세계의 사회적 역동성을 음향화한다.

 

그의 음악에서 그리드는 연속적 구조라기보다 모순된 반복이 만들어내는 질서의 환영이며, 패턴은 의례와도 같은 청취의 리듬이다. Becker는 자신의 작업을 “감독자적 입장에서 관리되는 음향 생태계”라 설명하며, 전통적 구성 대신 비선형적 지형으로 청취자를 유도한다. 허구적 서사는 그리드와 패턴이 해체된 자리에서 형성되며, 이는 기술적 탁월함과 급진적 청취가 만나는 지점에서 유동적으로 형체를 얻는다.

Rashad Becker - The Incident [2025]

 

 

UNMAPPED RHYTHMS #7 Pan Sonic - Vakio [1998]


핀란드 투르쿠에서 시작된 Pan Sonic은 기계적 정밀성과 감정의 노이즈 사이를 탐험한 듀오다. 미카 바이니오 (Mika Vainio)일포 베이사넨 (Ilpo Väisänen)은 컴퓨터 없는 전자음악을 추구하며, 손으로 직접 설계한 회로와 모듈러 신스를 통해 극단적으로 밀도 높은 사운드를 구축했다.

 

그들의 데뷔작 'Vakio'는 낮고 둔중한 펄스와 진공 같은 정적, 파열음을 리듬의 기초로 삼으며, 청각뿐 아니라 신체 전체를 진동시키는 경험을 유도한다. Pan Sonic의 리듬은 그리드에 정렬되어 있되, 감정의 간섭과 즉흥의 오류를 의도적으로 끌어안는다. 그들은 ‘실패한 반복’과 ‘떨림’ 속에서 리듬의 미세한 어긋남을 발견하며, 이를 통해 청취자의 내면 리듬까지 이탈시킨다. 'Vakio' 이후의 작업에서도 드럼머신처럼 일정한 비트는 드물고, 대신 스파크처럼 튀는 전압과 바닥을 울리는 저주파가 곡의 중심을 이룬다. 소리는 구조물이 아니라, 공기 중에서 무게를 얻는 에너지로 작동한다.

 

Pan Sonic은 소리를 통해 ‘느낌’을 말하려 했고, 그 느낌은 언제나 신체적이다. 이들은 전자음악이 다시 육체로 귀환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Pan Sonic - Vakio [1998]

 

 

UNMAPPED RHYTHMS #8 Vladislav Delay - Anima [2001]


핀란드 출신의 사운드 아티스트 Sasu Ripatti는 Vladislav Delay를 포함해 Luomo, Uusitalo 등의 이름으로 활동하며 리듬, 구조, 감각의 경계를 끊임없이 실험해왔다.

 

그는 드러머 출신의 배경을 바탕으로 리듬을 박자가 아닌 물성으로 다루며, 전통적 그리드에 대한 피로와 회의를 기반으로 비정형적 리듬 구조를 구축한다.

 

그의 앨범 'Anima'는 반복과 노이즈, 미세한 변주가 섞인 20분 트랙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리듬이 규칙이 아닌 잔향처럼 작동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그는 비트를 ‘죽이고’, 샘플을 감정의 흔적으로 남기며, 음악을 완결보다 감각적 미완으로 제시한다. Ripatti의 사운드는 기술적 완성보다 직관, 실패, 원초성에 가까우며, 리듬은 오히려 시간의 균질화에 저항하는 하나의 불안정한 형식으로 기능한다.

Vladislav Delay - Anime [2001]

 

 

UNMAPPED RHYTHMS #9 Bernard Parmegiani - De Natura Sonorum [1975]


Bernard Parmegiani는 프랑스 GRM을 기반으로 활동한 전자음악/구체음악 작곡가로, 리듬을 구조가 아닌 질감과 형태의 변주로 다룬 아쿠스마틱 음악의 거장이다. 마임과 포토몽타주, 방송 사운드 디자인을 기반으로 한 그의 접근은, 소리를 시간 위에 배열하는 것이 아니라 물성과 운동성의 조형으로 다루는 것에 가까웠다.

 

그의 대표작 'De Natura Sonorum'은 '소리의 본질에 대하여' 라는 제목처럼, 자연음과 인공음을 분류하고 교차시키며, 리듬 없는 리듬, 구조 없는 구조를 구축한다. 그의 작업에서 리듬은 규칙이 아니라 변형(metamorphosis)이다. 파르메지아니는 반복을 사용하되, 그 반복이 고정되지 않고 계속해서 진화하도록 설계한다. 각 소리는 마치 생물처럼 등장하고 소멸하며, 시간은 격자가 아닌 소리의 형상들이 지나가는 운동의 장이 된다. Gaston Bachelard (가스통 바슐라르) 의 시간 철학과 Clément Rosset (클레망 로세) 의 L'anti-nature (반자연주의)적 관점은 그의 소리 구성 방식에 깊게 스며들어 있으며, De Natura Sonorum은 지금도 Autechre 같은 현대 전자음악가들에게 영향을 주는 사운드 디자인의 전범으로 남아 있다.

Bernard Parmegiani - De Natura Sonorum [scored in 1975, released in 1978]

 

 

UNMAPPED RHYTHMS #10 Iannis Xenakis - Pléiades [1979]


공학자이자 건축가였던 Iannis Xenakis(야니스 크세나키스)는 수학과 건축의 언어를 작곡으로 전환한 인물이다.

 

Le Corbusier (르 코르뷔지에) 의 건축 팀에서 작업하며, 곡을 설계도처럼 그리고, 구조물처럼 구성하는 감각을 익혔다. 그의 리듬은 반복이나 박자가 아닌, 확률, 통계, 군론, 셋 이론, 셀룰러 오토마타 같은 수학적 모델에 기반한다.

 

Metastaseis에서는 글리산도를 기하학적 곡선처럼 활용하며 시각적 패턴을 청각적 구조로 전환했고, Pléiades에서는 타악기의 복잡한 배열로 리듬을 전통 그리드 밖의 물리적 밀도처럼 다룬다. 그는 리듬을 “사운드 구름”처럼 밀도와 확률의 분포로 정의했으며, 곡 하나하나가 새로운 구조, 새로운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Xenakis는 단순한 리듬의 파괴를 넘어서, 그리드 자체의 존재 조건을 재정의한 창조자였다.

Iannis Xenakis - Les Percussions de Strasbourg – Pléïades [1986]

 

 

UNMAPPED RHYTHMS #11 Mark Fell - Multistability [2010]


마크 펠 (Mark Fell )은 영국 셰필드 출신의 전자 음악가이자 설치 미술가로, 리듬의 격자 구조 자체를 문제 삼는 작곡가다.

 

그의 솔로 앨범 'Multistability'는 1밀리초 단위의 미세 시간적 간격을 기반으로, 반복되지만 규칙적이지 않은 패턴을 생성한다. 이 앨범에서 그는 Yamaha TX81Z의 친숙한 FM 신스 프리셋(예: “LatelyBass”)을 활용하되, 그것을 일반적인 문법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배열해, 시간 감각을 교란시키는 패턴을 만들어낸다.

 

Fell에게 리듬은 감정을 유도하는 구조물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지각의 상태를 전복하는 장치이며, 기술은 수단이 아니라 능동적 창작 파트너다. 그는 Max/MSP를 통해 타임라인 기반의 작곡을 거부하고, “낯선 시간 구조(unfamiliar time structures)” 속에서 청취자의 위치 자체가 변하도록 유도한다.

 

'Multistability'는 Raster-Noton의 수학적 질서에 맞서 ‘교란된 질서’를 제안하며, 리듬을 사운드가 아닌 사고의 형식으로 접근하는 작품이다. 이 앨범은 실험 음악이 어떻게 “감정 없이도 충격을 줄 수 있는가”를 증명하는 지점에서, 격자 없는 리듬의 미학을 선명히 구현한다.

Mark Fell - Multistability [2010]

 

 

UNMAPPED RHYTHMS #12 Autechre - Draft 7.30 [2003]


오테커(Autechre)션 부스(Sean Booth)롭 브라운(Rob Brown)으로 구성된 영국의 전자음악 듀오로, 기하학적 청각 패턴과 알고리즘적 구성으로 인간 청각의 경계를 실험해왔다. 그들은 격자(Grid)를 해체하는 것을 넘어, 리듬 구조 자체를 생물처럼 진화시키는 방식으로 시간과 청각의 감각을 재편한다.

 

그들은 리듬을 시간의 격자 위에 고정하는 대신, 사건 간 상호작용으로 움직이는 유기적 구조로 재구성한다. 'Draft 7.30'은 이 실험의 결정적 전환점으로, 정밀한 수작업과 생성형 시스템을 결합하여 사운드 내에서 시간과 운동의 새로운 논리를 구현한다.

 

리듬은 더 이상 반복되는 패턴이 아니라, 접히고 틀어지고 부유하는 시공간의 잔주름이다. 'IV VV IV VV VIII'는 파열된 시간성으로, 'Surripere'는 고요와 난기류의 흐름으로 감각을 교란하며, 'Reniform Puls;'는 붕괴하는 텍스처와 느슨한 반복 위에서 유영한다.

 

'Draft 7.30'은 격자의 오류와 잔여물을 하나의 질서로 전환시키며, 청취를 넘어 ‘리듬을 거주하는 경험’으로 확장한다.

Autechre - Draft 7.30 [2003]

 

 

UNMAPPED RHYTHMS #13 Millie & Andrea - Drop The Vowels [2014]


Millie & Andrea는 Demdike Stare마일즈 휘태커(Miles Whittaker, Millie)앤디 스톳(Andy Stott, Andrea)의 공동 프로젝트로, 정체성과 장르를 유희하는 음악 실험이다.

 

둘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 진지함보다 직관적 즐거움에 집중했고, 'Drop the Vowels'에서는 정글, 브레이크비트, 풋워크, 딥 하우스, 노이즈 등 다양한 리듬 언어를 해체하고 재조합했다. 이 앨범은 Modern Love 특유의 어두운 미학을 유지하면서도, 왜곡된 드럼, 지글거리는 하이햇, 쿼드 베이스와 같은 파편적 텍스처로 그리드를 흔들며 구성된다. 'Stay Ugly'나 'Temper Tantrum' 같은 트랙들은 정형 리듬의 과잉을 무너뜨리는 동시에 유쾌한 에너지로 청취자의 몸을 견인한다.

 

Millie & Andrea는 실험을 통해 정형 리듬의 권위를 교란하고, 어긋남과 왜곡을 하나의 리듬 감각으로 제시한다. 이들의 사운드는 ‘틀림’과 ‘일탈’을 재배열하며, 리듬이 기계적 순서가 아닌 자유로운 감각의 장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Millie & Andrea - Drop The Vowels [2014]

 

 

UNMAPPED RHYTHMS #14 SND - Travelog [1999]


SND는 마크 펠 (Mark Fell)맷 스틸 (Mat Steel)이 함께하는 셰필드 출신의 전자 음악 듀오로, 1990년대 후반부터 Mille PlateauxRaster-Noton 등의 레이블을 통해 격자의 관습에 저항하는 리듬 구조를 제안해왔다.

 

그들의 EP 'Travelog'는 초기 SND 미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하우스와 테크노의 물리적 감각은 유지하면서도, 그 안의 박자와 구성이 거의 “무의미하게 느껴질 정도로 억제”되어 있다. 이 앨범에서 리듬은 전진하지 않는다. 대신 하나의 상태에 머무르며 아주 느린 감각으로 변이한다. 뚜렷한 하이라이트 없이 미세하게 틀어진 비트, 공백처럼 남은 공간들, 그리고 의도적으로 “몸이 반응하지 않게 만든” 사운드 배열은 SND만의 트래블로그를 만든다. 이 리듬은 클럽을 거부하고, 감정도 이야기하지 않으며, 오직 청취자 스스로의 내면적 시간 감각을 호출한다.

 

'Travelog'는 반복의 생략이 아니라 반복의 재정의다. 이 EP는 “움직임 없는 움직임”이 가능하다는 역설을 청각적으로 증명한다.

SND - Travelog [1999]

 

 

UNMAPPED RHYTHMS #15 NHK yx Koyxen - Climb Downhill 2 [2022]


건축과 시각예술을 배경으로 둔 일본 출신 아티스트 마쓰나가 고헤이(Kouhei Matsunaga)는 NHK’Koyxen이라는 이름 아래, 장르와 리듬에 대한 고정관념을 무너뜨리는 전자음악을 제작해왔다.

 

그에게 있어 테크노는 틀에 맞추는 장르가 아니라, 불확정성과 해체를 실험하는 장(field)이자, 리듬의 파열을 위한 플랫폼이다. 2023년작 'Climb Downhill 2'는 이러한 그의 미학이 농축된 결과물로, 부서진 브레이크, 뒤틀린 로우파이 그루브, 기형적 패턴들로 구성된다. 앨범은 덜컥거리며 전진하고, 때로 멈칫하거나 비틀린 채 회전한다. 그리드가 흐트러질수록 리듬은 오히려 더욱 명료하게 ‘들리도록’ 만들어지며, 듣는 이의 감각을 재조정하도록 유도한다.

 

NHK’Koyxen의 음악은 춤을 유도하기보다, 리듬의 구조를 질문하게 만든다. 예측을 회피하며, 신경을 자극하지만 결코 혼란에 머물지 않는다. 그의 그리드는 미끄러지고, 울퉁불퉁하며, 무엇보다도 끝없이 다시 구성된다.

NHK yx Koyxen - Climb Downhill 2 [2022]

 

 

UNMAPPED RHYTHMS #16 Eli Keszler - Stadium [2018]


일라이 케슬러 (Eli Keszler)는 드러머이자 작곡가, 설치미술가로, 리듬과 공간을 재조직하는 사운드 아키텍트다. 그의 음악은 도시의 불균질한 리듬을 포착하고 이를 예술적 질서로 전환하는 작업이다.

 

'Stadium'은 그가 뉴욕 맨해튼으로 이주하며 마주한 혼잡과 밀도, 예측불가능성을 소리로 구현한 앨범이다. 드럼은 전통적 리듬 악기가 아니라, 공간을 채우고 시간의 질감을 만들어내는 도구로 기능한다. 퍼커션은 센서리 퍼커션 소프트웨어를 통해 디지털/아날로그의 경계를 해체하고, 필드 레코딩은 공간의 단면을 압축하여 음향적 지층을 형성한다.

 

케슬러의 리듬은 일정한 템포가 아니라, 공간을 따라 미끄러지고 부유하는 벡터다. 그의 곡들은 정확한 박자보다, 불균형 속에서 질서를 발견하려는 시도다. 리듬이란 결국 공간의 파동이며, 그는 이 파동을 ‘그리드 없이’ 제어한다.

Eli Keszler - Stadium [2018]

 

 

UNMAPPED RHYTHMS #17 Burnt Friedman & Jaki Liebezeit - Secret Rhythms 1


전설적인 드러머 야키 리베자이트 (JakiLiebezeit, CAN)와 전자음악가 번트 프리드먼 (Burnt Friedman)이 협력한 'Secret Rhythms' 시리즈는, 리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으로부터 출발한다.

 

이들은 4/4의 서양식 격자 구조를 넘어서, 리듬을 하나의 자연적 움직임의 공식으로 다룬다. 리베자이트의 “드럼 코드”는 이진 코드와 자연 법칙에 기반한 순환 리듬 이론이며, 프리드먼은 이를 다양한 시퀀스와 음향 실험으로 풀어낸다. 이들의 리듬은 선형적이지 않고, 언제든 다른 밀도와 패턴으로 분기할 수 있는 열린 구조를 지닌다.

 

'Secret Rhythms 1'은 덥, 재즈, 글리치, 미니멀 전자음악의 문법 위에서 리듬의 ‘형태’보다 그 ‘운동’ 자체에 주목한다. 템포 없이도 흘러가고, 마디 없이도 반복된다. 이 음악은 리듬을 수단이 아닌 대상 그 자체로 삼는다.

Burnt Friedman & Jaki Liebezeit - Secret Rhythms 1 [2002]

 

 

UNMAPPED RHYTHMS #18 Ondo Fudd - Eyes Glide Through The Oxide [2019]


Call Super로 더 잘 알려진 조셉 리치먼드 시튼(Joseph Richmond Seaton)은, Ondo Fudd라는 또 다른 이름 아래에서 더욱 유기적이고 추상적인 리듬 실험을 펼친다.

 

The Trilogy Tapes에서 발표한 'Eyes Glide Through the Oxide'는 정밀한 그루브보다 흐르는 듯한 리듬과 텍스처에 집중하는 작품이다. Ondo Fudd의 음악은 하우스와 일렉트로의 문법을 빌리되, 그것을 완벽하게 따르기보다는 일그러뜨리고 흩뿌린다. 촉각적인 비트, 무지갯빛 신스, 엉켜 있는 멜로디들은 견고한 구조가 아닌 유기적 운동 속에서 파동처럼 퍼진다. 그는 ‘타이트함’과 ‘엉망진창’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예측 가능한 그리드 위에 예측 불가능한 질감을 덧입힌다.

 

Ondo Fudd의 리듬은 완성된 형식이 아니라 유동하는 상태이며, 흐름 그 자체가 곧 구조가 된다.

Ondo Fudd - Eyes Glide Through The Oxide [2019]

 

 

UNMAPPED RHYTHMS #19 Frank Bretschneider - Rhythm [2007]


프랭크 브렛슈나이더 (Frank Bretschneider)는 독일의 전자 음악가이자 시각 예술가로, 전통적인 음악 교육 없이 ‘실행을 통한 학습’으로 자신만의 언어를 구축한 인물이다. 그의 음악은 디지털 미니멀리즘, 정밀한 리듬 구성, 그리고 기계적 질서와 인간적 불규칙성 사이의 긴장감에 뿌리를 둔다.

 

그의 대표작 'Rhythm'은 ‘리듬 그 자체’를 주제로 삼는다. 그는 루프 중심의 전통적 프로그래밍 방식에서 벗어나, 리듬을 재료로 삼는 작곡적 접근을 통해 구획된 시간의 틀을 해체한다. 이 앨범에서 리듬은 더 이상 단순 반복의 구조물이 아니라, 복잡하고 때로는 오류를 포함한 유기체처럼 다뤄진다. 특히 'Rhythm'에서 그는 매분 변화하는 짧은 트랙들과 미세 조율된 드럼 프로그래밍을 통해, 패턴의 예측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오히려 그 안에서 발생하는 비정형성과 변칙적 흐름을 강조한다. 그는 “루프, 페이드, 전환”의 편안함 대신, 커팅, 데드 노트, 이상한 마디 등을 사용해 리듬의 경계를 밀어낸다.

 

브렛슈나이더의 리듬은 전자적이되 무감각하지 않고, 정렬되었으되 무질서를 내포한다. 그리드 기반의 음악에서 어떻게 ‘리듬의 어긋남’이 의미를 획득할 수 있는가에 대한 그의 실험은, 디지털 시대의 ‘기계적 음악’이 어떻게 다시 인간적인 감각으로 환원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Frank Bretschneider - Rhythm [2007]

 

 

UNMAPPED RHYTHMS #20 Beatrice Dillon - Workaround [2020]


런던 출신의 프로듀서 베아트리스 딜런 (Beatrice Dillion)은 리듬을 구성하는 ‘그리드’를 해체하지 않되, 그것을 새로운 방식으로 재조정하며 실험한다.

 

그녀의 데뷔 앨범 'Workaround'는 전 트랙을 150BPM으로 고정하고, 리듬을 중심에 둔 독특한 시간 구조를 탐색한다. 정교하게 절제된 사운드와 딜레이 없는 공간 처리, 그리고 탁월한 악기 샘플링—타블라, 첼로, 페달 스틸 기타, 색소폰 등—을 통해 컴퓨터 기반 구조 위에 유기적 질감을 덧입힌다. 딜런의 음악은 덥의 공허함을 차용하되 과도한 잔향을 거부하며, 건조하고 또렷한 음색을 통해 리듬의 구조적 실험에 집중한다. 반복되는 패턴은 정밀하게 분해되고, 여백은 리듬처럼 작동한다.

 

'Workaround'는 청취자에게 시간과 공간의 균열을 지각하게 하며, 그리드 위에서조차 무게 없는 유동성을 발휘하는 드문 전자음악의 예로 남는다.

Beatrice Dillion - Workaround [2020]

 

 

UNMAPPED RHYTHMS #21 Thomas Brinkmann - Retrospektiv [2017]


독일 출신의 토마스 브링크만 (Thomas Brinkmann)은 미니멀 테크노의 실험 정신을 미학적 극한까지 밀어붙인 개념적 사운드 아티스트다. 조각과 미학, 기계이론을 공부한 그의 음악은 단순한 반복을 넘어서며, 루프 자체를 하나의 철학적 구조로 작동시킨다.

 

개조한 톤암 턴테이블, 손상된 바이닐을 활용한 루프 실험, 그리고 시각적 패턴까지 아우르는 그의 작업은 정형화된 그리드 구조를 해체하고 재구성한다. 앨범 'Retrospektiv'는 20년간의 다양한 실험을 집약한 컬렉션으로, 테크노와 익스페리멘탈을 오가며 반복과 차이를 오롯이 드러낸다. 특정한 BPM과 피치의 고정 속도, 그리고 예기치 않은 전개 방식은 리듬에 ‘흠집’을 남기는 방식으로 청취자의 시간을 재구성한다.

 

브링크만은 반복을 통해 ‘배움과 아픔’을 설계하며, 리듬을 통해 인간적 불완전성을 드러낸다. 그에게 루프는 단순한 패턴이 아니라, 진정한 감각의 연습이다.

Thomas Brinkmann - Retrospektiv [2017]

 

 

UNMAPPED RHYTHMS #22 D/P/I - Composer [2016]


샘플 기반의 음악부터 감성적 연주 프로젝트까지 다채로운 활동을 펼쳐온 LA 출신의 음악가 알렉스 그레이 (Alex Gray)는 D/P/I (DJ Purple Image) 라는 이름 아래, 전자음악의 물리성과 추상성 사이를 탐구해왔다.

 

그의 마지막 D/P/I 앨범 'Composer'는 작곡가의 개입 없이 스스로 형성되는 리듬이라는 아이디어를 중심에 둔다. 미디 노브를 통한 제어, 반복적 패턴, 인간적 오류에 가까운 미세한 흔들림—이 모든 요소는 그리드의 바깥에서 새로운 리듬적 질서를 만들어낸다. 곡들은 일련의 마이크로 컴포지션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비선형적 전개와 기술적 실패의 잔영 속에서 자율적으로 진화한다.

 

D/P/I의 리듬은 전통적 전자음악 문법에 저항하면서도, Steve ReichMark Fell과 같은 리듬 탐구자들의 계보 위에 놓인다. 앨범은 장르를 초월한 추상적 패턴의 축적으로서, 청취자의 패턴 인식과 공간 감각을 끊임없이 교란시키며, 분열과 질서가 공존하는 사운드 구조물로 작동한다.


D/P/I - Composer [2016]

 

 

UNMAPPED RHYTHMS #23 Jlin - Dark Energy [2015]


Jlin은 시카고 풋워크(Footwork)의 격렬한 리듬 언어를 해체하고, 그것을 자기 내면의 구조로 다시 짜맞추는 인디애나 출신의 작곡가다. 그녀의 대표작 'Dark Energy'는 루프와 샘플 없이 완전히 독립된 사운드로 구성되며, 예측 가능한 그리드를 거부하고 불협과 불균형을 감각의 질서로 전환한다.

 

그녀의 리듬은 반복이 아니라, 불완전성과 실수, 긴장을 구성하는 마찰로부터 생성된다. 트립렛 기반의 복합 구조, 디지털 합성의 비가시적 층위는 단순한 비트 배열을 넘어 ‘무(無)’로부터의 리듬 구성이라는 존재론적 탐색에 가깝다.

 

Jlin에게 음악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이며, 그리드의 질서를 따르기보다 자신만의 내면적 시간 감각에 따라 조형된다. 'Dark Energy'는 그리드 바깥에서 리듬을 상상하는 법, 리듬을 감정의 지도처럼 설계하는 하나의 실천이다.

Jlin - Dark Energy [2015]

 

 

UNMAPPED RHYTHMS #24 AOKI takamsa - RV8 [2013]

 

아오키 타카마사 (AOKI takamasa)는 소리를 조각하고 리듬을 구성하는 오사카 출신의 전자 음악가이다. 그는 음악을 구성 대신 흐름으로 다루며, 청취자의 신체가 즉각 반응하는 리듬 회로를 설계한다.

 

대표작 'RV8'은 프랙탈 구조의 리듬 변주를 통해, 반복 안에서 예외와 변형이 끊임없이 분기되는 감각적 지형을 만들어낸다. 곡 제목조차 숫자로만 명명되어, 사고 이전의 반응을 유도하는 ‘의미 없는 리듬’의 해방을 지향한다.

 

정밀함과 흔들림이 공존하는 그의 리듬은, 격자 바깥에서 살아 움직이는 유기적 패턴이며, 이는 ‘Unmapped Rhythms’가 질문하는 리듬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실천 중 하나다.

AOKI takamsa - RV8 [2013]

 

 

UNMAPPED RHYTHMS #25 Nicola Ratti - Pressure Loss [2016]


니콜라 라티 (Nicola Ratti)는 건축학적 감각과 아날로그 기반 전자음향을 결합해, 리듬을 구조적 사건으로 조직하는 밀라노 출신의 사운드 아티스트이다. 그의 작업은 반복과 미묘한 변주를 통해 최소한의 요소로 복잡한 리듬 앙상블을 만들어낸다.

 

대표작 'Pressure Loss'는 8개의 LFO와 필터만을 사용해 극도로 제한된 수단으로 완성된 리듬 실험이다. 각 트랙은 개별성을 유지하면서도 유기적인 하나의 흐름처럼 작동하며, 단순한 음향 구조가 거대한 공간 감각으로 확장된다. 라티는 이를 통해 리듬을 사운드 디자인이 아닌, 공간을 생성하는 동적 시스템으로 이해한다.

 

그의 리듬은 예측 가능한 격자 위에 놓이지 않는다. 오히려 최소한의 진동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시간차와 긴장 속에 청취자의 감각을 이끄는 비격자적 구조를 설계한다. 그에게 있어 리듬은 청각의 구성물이 아니라, 시간 위에 서서히 드러나는 ‘공간적 사건’이다.

Nicola Ratti - Pressure Loss [2016]

 

by FNST_S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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